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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현대판 마녀”
“게임은 현대판 마녀”
  • 변인호
  • 승인 2019.05.29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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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결정에 국내외 게임 업계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 게임 업계도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해 대응에 나섰지만 보건당국 및 학부모 표를 의식한 몇 국회의원에 맞서야 하는 게임 업계의 앞날은 여전히 어둡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동안 게임질병코드를 반대해온 협단체들이 게임 업계는 대변했지만, 정작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주지 못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왼쪽부터)김병수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회장,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회장, 중앙대 김주명 학생,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회장, 최요철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 회장(사진=변인호 기자)<br>
(왼쪽부터)김병수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회장,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회장, 중앙대 김주명 학생,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회장, 최요철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 회장(사진=변인호 기자)

◆게임 업계 “질병코드 등재 반대” 한 목소리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9일 서울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출범식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출범식에는 공대위 위원장인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교수),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회장,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회장, 김병수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회장, 최요철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공대위는 ‘게임 자유 선언’을 통해 “게임은 젊은이들의 살아있는 문화지만, 지금 현대판 마녀로 만들어지고 있다. 기성 세대들이 찾은 젊은이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새로운 악이 19세기에는 소설, 20세기 TV, 지금은 게임”이라며 “게임은 저희들의 소중한 문화이며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를 여는 창이자 혁신의 산물이고 인공지능을 낳은 토대로, 우리들의 삶에 위안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소중한 친구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공대위 출범 전부터 게임 업계는 여러 단체에서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며 WHO의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해왔다. 전날인 28일에는 한국게임개발자협회가 경기도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서 'WHO 게임질병코드 부여 및 국내 도입 반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한국인디게임협회, 넥슨 노동조합,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등이 이름을 올렸다.

같은 날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도 열렸다. 토론회는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와 한국게임산업협회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사진=변인호 기자
10만여명의 관람객이 찾은 융복합게임쇼 '2019 플레이엑스포' 현장. 넥슨과 블리자드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콘텐츠 축제 '네코제X블리자드'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사진=변인호 기자)

긴급토론회에서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WHO의 게임 중독 기준은 매우 불명확하며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각 국가별로 개별적인 판단을 권장했다”며 “과학적 근거도 불분명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를 넘어가면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불필요한 규제를 한국에만 앞다퉈 도입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세종시 정부청사에서는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WHO 개정안에 찬성하는 보건복지부와 반대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모인 부처 차관회의도 열렸다.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게임질병코드 국내 도입 전 충분한 준비 시간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도입 여부와 시기, 방법 등에 대해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로 했다.

특히 28일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지난 주말 WHO가 게임이용 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분류(ICD)개정안을 확정에 따라 국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며 “관계부처들은 향후 대응을 놓고 조정되지도 않은 의견을 말해 국민과 업계에 불안을 드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서 “국무조정실은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와 게임업계, 보건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사진=변인호 기자
사진=변인호 기자

◆표심 잡아야하는 정치권과 그에 맞서야 하는 게임 업계

하지만 게임 업계는 순탄하지 못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게임 산업을 육성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 중독을 치료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대립은 표면적인 부분이다. 28일 이낙연 총리가 국무조정실을 컨트롤타워로 해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이와 별개로 공대위가 범부처 민관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공대위 위원장은 “이낙연 총리의 제안은 환영하고 있지만, 게임질병코드가 도입됐을 때 병역 문제와 관련해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국방부, 질병의 원인을 만드는 게임 스타트업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고민에 빠질 수 있는 중소벤처기업부까지 이낙연 총리의 제안에 더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범부처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의학계와 국회의 연대는 이미 수년에 걸쳐 단단해졌다. 지난 2013년 정신과 의사 출신인 신의진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처럼 규정하는 내용을 담은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개정안(일명 4대 중독법)’을 대표발의했다. 당시 한국중독정신의학회는 해당 법안을 “반드시 입법화를 이뤄내야 할 숙원사업”이라며 학회 회원들에게 공지하기도 했다.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 이름으로 게재된 현수막이 29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며 이 부분이 다시 확인됐다.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선출된 윤 의원은 국내 게임사들이 가장 많이 몰린 게임 허브인 판교에 “‘게임중독’은 질병!”이라고 현수막을 걸었다.

 

캡처=인터넷 커뮤니티(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3543262?od=T31&po=0&category=&groupCd=)
캡처=인터넷 커뮤니티(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3543262?od=T31&po=0&category=&groupCd=)

앞서 윤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가 ‘게임 중독’이어서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발언하며 논란이 일었다. 윤 의원은 현재 자유한국당 성남분당갑 당협위원장이다. 이번 현수막 게재 역시 부유층, 장노년층 및 학구열이 높은 성남 학부모들의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게임 업계에서는 의학계가 저렇게 준비하는 동안 대책 없이 있다가 당한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을 자주 접하고 좋아하는 연령대는 10대부터 40대 정도까진데, 10대에겐 투표권이 없고 2030세대보다는 40대 이상 세대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정치권에선 게임을 옹호,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다는 분석도 많다.

정치권은 미래의 유권자인 10대보다는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하는 것은 게임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과 게임을 해보진 않았지만 왠지 나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장노년층 등 당장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질병코드 도입 찬성 측에서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학부모의 목소리를 대변한 적은 있어도 질병코드 도입에 반대하는 게임 업계는 게임을 즐기고 사랑하는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모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동력이 부족했다”며 “게임질병코드가 도입되면 가장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선량한 게이머들인데,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대변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FOURSTER 변인호 기자 l jubar@4ster.kr 변인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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